칼럼

득리 得理

득리 得理

by 운영자 2020.06.04

박영식

나는 묵란을 치고
난 잎새는 내 눈빛을 닦고

너와 나 마음 한 자락
비워내는 이 작업은

결국엔
무無
그것을 위한
정적 같은
예비

박영식 시집 『편편산조』, 《책만드는집》에서
[작품해설]

사람이 배우고 이치를 깨닫고자 함은 아무 일이 없는 무탈한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어야 한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은 달라도 추구하는 목적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가장 우선하는 일이 아닌가 한다. 건강하고 행복을 지켜내는 일이 쉬운 듯해도 결코 쉽지 않다. 세상이 코로나19로 요동치는 것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박영식 시인의 시집 『편편산조』는 꽃이 꽃잎을 떨구는 순간부터 더 치열한 몸부림으로 씨앗을 익혀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읽어보는 시조, 득리得理는 사물의 이치를 보고 깨달음을 얻는 일을 말한다. ‘나는 묵란을 치고 난 잎새는 내 눈빛을 닦고’라는 것에서 고고한 삶의 결을 드러내고 있다. 눈으로 보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정감이야말로 세상 그 어느 것보다 뜨거운 감동을 남겨준다. 그런 감동의 마음을 예비(豫備)하였다는 것은 마음에 모든 삶의 모습을 담아두었다는 결론이 든다.

세상 그 무엇이 지나가도 무엇이 지나갔는지 남기지 않는 것이 허공의 일이다. 어둠이 지나가든 햇빛이 지나가든 바람이 지나가든 허공은 그 허공으로 제 자리를 지켜낸다. 층층 탑이 그 자리를 범해도 결국 그 탑의 자리까지 허용하고 남은 자리를 지켜낸다. 박영식 시인의 마음이 비워내고 채워내는 일보다 더 큰 마음길, 득리라는 길을 걷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