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는 봄

가는 봄

by 운영자 2020.05.06

이 늦은 참회를 너는 아는지

안도현

내가 술로 헝클어져서
집으로 돌아오는 어둔 길가에
개나리꽃이 너무 예쁘게 피어 있었지요

한 가지 꺾어들고는
내 딸년 입술같은 꽃잎마다
쪽,쪽 뽀뽀를 해댔더랬지요

웬걸
아침에 허겁지겁 나오는데
간밤에 저질러버린
다시는 돌이키지 못할 내 잘못이
길바닥에 노랗게 점점이 피를 뿌려 놓은 것을
그만 보고 말았지요

개나리야
개나리야
나는 고쳐야 할 것이 너무 많은
인간이다 인간도 아니다

봄에 취한 시적 화자의 모습이 보인다. 어두운 길을 찬란히 밝히고 있는 개나리꽃이 사랑스러워 보여 결코 맨 정신으로는 하지 않을 짓을 한다. 다음날 아침, 봄의 취기에서 겨우 깨어 나오는데 어젯밤 내가 저지른 잘못의 현장이 적나라하다. 그 사랑스럽던 생명들이 지금 노란 피를 흘리며 바닥에 처참히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이미 늦어버린 참회를 한다. 난 인간도 아니라고.
온 세상을 찬란하게 장식했던 개나리가 다 져 버렸다. 가는 봄이 아쉬워 개나리 가지라도 잡고 꽃잎에 입맞추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