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장사진을 치다

장사진을 치다

by 운영자 2020.01.09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일찍부터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손이 시릴 정도의 영하의 날씨에도 극장 밖까지 장사진을 쳤다.”
“연말 이웃 돕기 미담 행렬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전국 곳곳에서는 유류 가격이 조금이라도 저렴할 때 주유하려는 차량이 주유소마다 장사진을 이루었다.”

장사진은 많은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모양을 뜻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장사진을 치다’, ‘장사진을 이루다’라는 표현으로 자주 쓰이는 이 말의 본래의 뜻을 아는가?

장사진(長蛇陣)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병법 용어이다. 여기서 장사(長蛇)는 중국 상산(常山)에 살았다는 ‘솔연’이라는 몸뚱이가 긴 독사를 가리킨다. 이 뱀은 난폭하고 움직임이 빨라서 다들 솔연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무서워했다. 이것은 머리를 치면 꼬리가 빠르게 반격해 오고, 꼬리를 치면 머리로 공격한다. 몸뚱이 한가운데를 공격하면 머리와 꼬리가 양쪽에서 공격한다. ‘수미상응(首尾相應)’, ‘수미상접(首尾相接)’이라는 말은 이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솔연은 공격과 방어를 적절히 하면서 상대가 궁지에 몰리기를 기다렸다가 비호(飛虎) 같이 달려들어 독이 묻은 날카로운 이빨로 상대를 단숨에 물어 죽인다. ‘솔연(率然)’이라는 말 자체에 ‘비호같이 빠르다’라는 뜻이 들어 있다.
손자(孫子)는 용병술에 뛰어난 장수는 장사(長蛇) 솔연처럼 진을 친다고 했다. 그게 ‘장사진’이다. 장사진은 뱀처럼 길게 진을 친다는 뜻이 아니라 각 부대가 유기적으로 협조해 적을 물리칠 수 있는 병술을 뜻한다.
오늘날 우리가 자주 쓰는 ‘장사진을 치다(이루다)’라는 말은 위의 병법에서 사용하는 장사진과는 그 의미가 많이 달라져, 많은 사람이 줄지어 뱀처럼 길게 늘어서 있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