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by 운영자 2019.10.22
- 이생진 -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난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수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죽어서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놓아주었다
삼백육십오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 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이생진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신도출판사》에서
작품설명
이생진 시인은 섬과 산 바다 등에 관련하여 하나의 주제를 갖고 우리나라 땅에 대한 소재를 찾아서 시를 쓴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산에 가는 이유, 바다에 가는 이유, 섬에 가는 이유 등의 시집들이 있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는 1978년 발간한 시집이다. 성산포의 바다와 파도 그리고 방파제를 통해 사람이 그리워하는 그 그리움만큼 파도가 끝없이 밀려와 부딪치고 있다는 고독을 전해주고 있다. 이 시에는 삼백육십오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에 있는 바다를 다 바라볼 수 없다고 말한다. 바다라는 망망한 이야기는 매일 같이 들어도 그 말이 다 다르게 들리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어쩌면 우리 인생의 삶이 늘 같은 풍경처럼 보이나 어제와 오늘은 사뭇 다른 삶의 파도가 밀려와 있다. 어제의 바람과 오늘의 바람이 내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생진 시인은 성산포가 그리운 것은 한 달을 살아도 그리움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바다를 그릇 삼았던 바위가 뚫어진 구멍마다 사연이 다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의 가슴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이 담겨 있을까 짐작을 해도 그 짐작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사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성산포는 쓴 소주 한 잔으로 삶의 잔을 넘기고 파도 소리 안주 삼아 그리움을 잊고 싶지만 그 그리움이 사라지지 않는 섬이라 생각한다. 그 어떤 말로도 다 듣지 못 하는 말들을 성산포 바닷가에서 천연덕스럽게 가슴 무너지도록 듣고 있는 우리들 삶의 모습을 그려놓은 듯 보인다. 외롭다고 찾아가 그 외로움을 위로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