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진검승부

진검승부

by 운영자 2019.09.05

“젊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피아니스트들이 진검 승부를 펼친다.”
“8K TV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TV제조업체들의 진검 승부가 펼쳐질 전망이다.”
“하반기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진검 승부가 펼쳐질 예정이다.”
“너와 나 누가 공을 더 많이 넣나 오늘 진검 승부를 겨루자.”

대중매체에서든 개인 간의 대화에서든 많이 쓰는 말 가운데 ‘진검승부’가 있다. 이 말의 뜻을 제대로 알고 쓰는 걸까? 그리고 이 말이 일본말인 걸 알고 쓰는 것일까?
‘진검승부’는 진짜 칼로 싸워서 이기고 짐을 가린다는 뜻이다. 옛날 일본의 무사들은 평소에 나무로 만든 검으로 검술을 익히다가 진짜 싸움에서는 진짜 칼을 들고서 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웠다. 이것이 진검승부이며 일본어로는 ‘신켄쇼부’라고 발음한다. 간혹 “쇼부를 보자 어쩌고...” 하는 사람들을 보는데, ‘쇼부’가 ‘승부’의 일본말이다. ‘진검승부’니 ‘쇼부’니 하는 일본말 찌꺼기를 더 이상 쓰지 말자.
일본어 순화 자료집에 ‘진검대결’을 ‘생사 겨루기’라 순화해 놓았는데, 이 말도 어감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생사를 겨루며 피아노를 친다.” “TV 판매 시장에 죽기 살기로 나간다.” “모바일게임 시장에 진짜 검을 들고 싸우듯이 목숨을 걸고 뛰어든다.” “너랑 내가 목숨을 걸고 농구 게임을 하자.” 이런 말이 된다. 모두 지나치게 과장스럽고 자극적이지 않은가?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좋은 우리말이 얼마든지 있다. ‘승부를 가리다’나 ‘승패를 결정하다’라 쓰든가, 아니면 ‘정면대결’, ‘맞대결’, ‘한판 대결’ 등을 쓰면 된다.
“젊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피아니스트들이 승부를 가린다.
“8K TV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TV제조업체들의 정면대결이 펼쳐질 전망이다.”
“하반기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맞대결을 벌일 예정이다.”
“너와 나 누가 공을 더 많이 넣나 오늘 승패를 결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