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들풀
- 민병도-

들풀
- 민병도-

by 운영자 2019.06.04

허구한 날
베이고 밟혀
피 흘리며
쓰러져놓고

어쩌자고
저를 벤 낫을
향기로
감싸는지…

알겠네
왜 그토록 오래
이 땅의
주인인지

민병도 시조집 『들풀』. 《목언예원, 2011년》에서

작품설명

우리가 민초들의 삶을 보통 풀잎에 비유를 한다. 풀잎은 그만큼 세상을 황무지에서 아름다운 세상으로 바꾸어 놓는 역할을 한다. 큰 거목이 세상을 바꾸어 내고 이끌어 간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풀잎처럼 푸르게 세상을 뒤덮지 못한다. 다만 커다란 나무는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그늘을 내어주어 새롭게 거듭날 기회를 만들어 준다.

민병도 시인의 시조 「풀잎」은 풀잎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권력을 잡으려 하는 것도 아니고 살아가기 위해 땅에 뿌리내리고 살아가고 삶에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자기 자신을 베어내는 낫의 날을 감싸고 아픔을 주었지만 풀 향기로 더 지극한 사랑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민초들은 늘 자기 자신을 희생하여 외세의 침략에 앞장서서 싸웠고 희생을 감수했다. 그런 민초들의 삶이 없었다면 이 땅의 역사는 살아 숨 쉬지 못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저를 벤 낫을 / 향기로 감싸주는” 풀잎이 있었기에 이 땅이 푸르른 희망을 간직할 수 있는 아름다운 땅이 되었다는 것이다.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 없는 민초들이었지만,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이 땅에 어떤 어려움도 맞서서 이겨내며 살아왔기 때문에 이 땅의 푸른 희망의 뿌리를 간직하고 살아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왜 그토록 오래 / 이 땅의 / 주인인지” 알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위대한 민초들의 함성을 알기 말하고 있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풀잎처럼 힘은 크지 않지만, 수많은 풀잎들이 어깨동무하여 푸른 세상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