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급반 교과서

하급반 교과서

by 운영자 2019.01.29

- 김명수 -

아이들이 큰 소리로 책을 읽는다
나는 물끄러미 그 소리를 듣고 있다
한 아이가 소리내어 책을 읽으면
딴 아이가 따라서 책을 읽는다
청아한 목소리로 꾸밈없는 목소리로
“아니다 아니다!”?하고 읽으니
“아니다 아니다!” 따라서 읽는다
“그렇다 그렇다!” 하고? 읽으니
“그렇다 그렇다!” 따라서 읽는다
외우기도 좋아라 하급반 교과서
활자도 커다랗고 읽기에도 좋아라
목소리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한 아이가 읽는 대로 따라 읽는다

이 봄날 쓸쓸한 우리들의 책읽기여
우리나라 아이들의 목청들이여

신경림, 정희성 편 『한국현대시선 Ⅱ』, 《창작과비평사, 1985년 발행》에서

작품설명

요즘 아이들은 어린이집, 유치원을 필수적으로 다니기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1969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한글이며 숫자를 처음 배웠기 때문에 3학년이 되어서야 스스로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선생님은 책을 읽을 줄 아는 학생은 손을 들으라 하여 책을 읽으라 하고 나머지 친구들은 그 친구를 따라 함께 따라 읽었다. 김명수 시인의 「초급반 교과서」는 글씨가 크고 다 함께 다라 읽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깃들게 한다.

어떻게 보면 어린 시절에만 간직할 수 있는 동심의 세계다. 누구나 한 번쯤 거쳐 오는 시간이 아닌가 한다. “바둑아, 바둑아!”라고 함께 따라 읽었던 생각이 난다. 김명수 시인은 “아니다 아니다!”, “그렇다 그렇다!”라는 말은 아이들에게 예전에는 일방적으로 주입식 교육을 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은 책을 읽으면서 그 뜻과 의미까지 확실하게 생각하고 분석하며 토론을 하며 책 읽기를 한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도 하급반 교과서는 아이들의 생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그림과 큰 글씨로 교과서가 만들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