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린 생

시린 생

by 운영자 2019.01.29

- 고재종 -

살얼음 친 고래실 미나리꽝에
청둥오리 떼의 붉은 발들이 내린다

그 발자국마다 살얼음 헤치는
새파란 미나리 줄기를 본다

가슴까지 올라온 장화를 신고
그 미나리를 건지는 여인이 있다

난 그녀에게서 건진 생의 무게가
청둥오리의 발인 양 뜨거운 것이다

고재종 시집 『쪽빛 문장』, 《문학사상사, 2004년 발행》에서

작품설명
이 시는 고래실 미나리꽝에 살얼음이 끼어도 청둥오리가 내려앉고 푸른 미나리가 자란다. 그럼에도 그 추운 미나리꽝의 물속을 청둥오리처럼 헤집고 다니며 미나리를 건져올려야 하는 사람이 있다. 미나리를 심어 수확해야 먹고사는 아낙의 모습을 그린 시다.

고재종 시인의 시 「시린 생」은 춥다고 세상살이를 멈출 수 없는 사람의 운명을 바라보는 듯 그려 놓고 청둥오리의 발은 추위에도 잘 견디도록 발달하여 있듯이 가슴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고 청둥오리의 발목이 되어 미나리꽝의 미나리를 먹이처럼 건져 올리는 아낙의 생의 무게를 들어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얼마나 차갑고 시린 몸이 되어 있을까 생각을 해 본다. 추운 겨울 두껍게 옷을 입어도 벌벌 떨리는데 고래실 미나리꽝의 살얼음을 헤치는 그 물속에 있는 미나리를 건져 올리는 사람의 손과 발은 얼마나 시릴까? 추위 속에서 미나리를 건져 올린 무게만큼 아낙의 하루는 삶이 보상받는다.

운명이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고 본다. 물속에는 물고기가 살고 산에는 나무들이 살게 되어 있다. 또한 하늘에는 무궁한 꿈의 별이 떠오르게 되어 있다. 모두가 시린 생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야 물속의 물고기로 살아가고 산속의 나무로 살아간다. 시린 생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다면 아름다운 생을 보상받지 못할 것이다. 그 아름다움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 아낙은 고래실 미나리꽝에 청둥오리처럼 뛰어들게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