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세상 일이란 시각에 따라 프리즘의 빛처럼 왜곡되어 집니다.

세상 일이란 시각에 따라 프리즘의 빛처럼 왜곡되어 집니다.

by 운영자 2018.10.25

동물의 왕국을 주름잡는 치타는 시속 120km로 달릴 수 있다고 합니다. 반면 치타의 먹이 감인 톰슨가젤은 시속 80km이므로 치타가 사냥을 하면 100% 성공할 것이라 생각이 들지만 현실은 치타의 사냥 성공률은 30%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 아마 생사가 걸린 싸움이라 치타는 그 경주에서 지더라도 또 뛸 수 있지만 가젤은 경주에서 지면 또 뛸 수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먹기 위해 뛰는 것과 살기 위해 뛰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검사내전이라는 책에 실린 내용 중 하나입니다.
보험계약을 하고 미래의 위험을 보장받으려는 소박한 꿈을 꾸던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 혹은 보험수익자에게 보험 계약에서 보장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보험금을 청구하였는데 보험금 부지급이라는 통보를 받게 되었을 경우 민원이나 소송을 통해 해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숨어있는 권리를 찾기 위해 내 성격의 바닥까지 드러내며 치열하게 싸웠는데 결과가 좋지 않은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가 얼마나 상실감이 클까?’
세상일이란 시각에 따라 프리즘의 빛처럼 왜곡돼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합니다. 보험사고의 발생으로 인하여 얻을 보험금이라는 달콤한 이득만을 먼저 그리다가는 앞에서 가능하다는 확신을 주는 사람의 말만 믿으려 합니다.
세상일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은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거나 의외의 결과가 도출되었을 경우 위로삼아 던지는 말 일지도 모릅니다. 정답이 없는 부분은 정치적인 변화가 될 수도 있고 경제적인 강자의 힘에 밀리는 경우도 있고, 막강한 지식을 가진 전문가 집단에 굴복하는 경우도 있으며 무지에서 오는 증거력의 부족 등도 그 이유가 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선량하며 평범하므로 오늘의 힘들고 예외적인 상황에 굴하지 않고 앞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일확천금의 미래는 아닐 지라도 소박한 미래가 다가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