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임영석시인과함께쉽게읽는시

靑山이 소리쳐 부르거든

靑山이 소리쳐 부르거든

by 운영자 2020.03.31


양성우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대답하라.
기나긴 죽음의 시절,
꿈도 없이 누웠다가
이 새벽안개 속에
떠났다고 대답하라.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대답하라.
흙먼지 재를 쓰고
머리 풀고 땅을 쳐
나 이미 큰 강 건너
떠났다고 대답하라.

신경림 엮음 『불은 언제나 되살아 난다』,《 창작과 비평사》에서

[작품해설]
봄이면 남모르게 울어주는 꽃들이 많다. 그 꽃들의 울음에 속마음 다 헐어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도 있고, 떠나간 사람의 가슴에 받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꿈을 지닌 사람에게 마음의 향기를 전하기도 한다. 봄은 무엇보다도 희망을 간직하게 하는 계절이다.

양성우 시인은 「靑山이 소리쳐 부르거든」에서 청산이 소리쳐 부르면 나, 떠났다고 말하라 말한다. 산은 세상의 모습을 수없이 목격하고 지나왔다. 그러나 산은 그 어떤 모습을 바라보았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묵묵히 바람 불어 넘어가는 흰 구름 하나 잡아두지 않는다. 그런 산의 모습처럼 의연하게 살아가야 함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100여 년의 현대사에 많은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그 시련은 산에게는 봄바람 같은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다 아우성쳐도 산은 그 사람들의 아우성에 대답하지 않는다. 산은 스스로 소리쳐 그 메아리의 답을 들으라는 깊은 마음만 품고 있을 뿐이다. 깊은 산은 깊은 강을 품는다. 산의 깊이가 세상의 깊이를 품어내기 때문이다.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떠났다고 해도 산은 제 자리 서서 세상의 모습을 굽어볼 뿐이다. 그게 산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