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임영석시인과함께쉽게읽는시

낡은 문이 가르친다

낡은 문이 가르친다

by 운영자 2020.01.14

심수향

언제부터인가 문이 삐거덕거린다
삐거덕거리면서 열리지 않는다
왈칵 밀치면 더욱 열리지 않는 문
달래듯 어루만지는 손길에만 흔연히 열린다
사람들은 시원찮은 문 바꾸라고 하지만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것을
가르치는 문
세상의 문은 그렇게 열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문
때로는 깊은 속내 열어 보이듯
꽃 피는 소리에도 가만히 열리기도 하는
저 낡은 문의 가르침

이근배 외 279인 지음 『연간 지하철시집』,《스타북스 /2015년》에서

【임영석 詩人과 교차로에서 쉽게 읽는 시】

심수향 시인의 「낡은 문이 가르친다」에는 삶의 손길이 따뜻하게 스며있는 세월이 담겨있다. 어떻게 보면 투박한 사내의 손길을 놓지 못하는 연정이 느껴진다. 그만큼 살가운 세월의 흐름이 문을 열고 닫으면서 함께 지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이야 기술도 좋고 문의 재료들이 좋아 자동으로 열고 닫히는 문이 있지만, 불과 몇십 년, 아니 지금도 많은 곳에 문들은 삐거덕거리는 소리로 문이 열린다. 그런 문은 그 문이 잘 열리도록 조금 들어주거나 밀어 열어야 한다. 그러한 문을 열고 살아본 사람은 삶의 녹록지 않다는 뜨거움까지 느꼈을 것이다.

자동으로 된 문을 들락거리는 사람은 사람 삶의 냄새를 피의 값으로만 지불할 것이다. 그러나 삐거덕거리는 문을 열며 살아본 사람의 삶의 숨소리 하나하나 따뜻하게 대해주고 서로를 품어주고 보듬어주는 마음마저 전해주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니 돈이 전부가 된 요즘 세상에도 힘든 마음을 다독여주는 정을 간직했을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문이 있다. 그 문들이 다 나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절대 출입 불가의 문 앞에서 절망을 맛보아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열리지 않는 문이라 하여 절망하지 마라, 세상에 닫혀 있는 문은 없다. 모두 열리기 때문에 문인 것이다. 낡은 문은 비록 삐거덕거리지만 꽃 피는 계절이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살아도 아무 탈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