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의자
by 운영자 2019.12.05
- 이정록 -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시를 읽는 삶의 풍경들? 『공감』, 《교양인》에서
작품설명
이정록 시인의 시 「의자」는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이 모두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삶의 의자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부모에게는 자식이 가장 믿음직한 의자이고, 자식에게는 부모가 가장 훌륭한 의자이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언제나 올려놓고 응석을 부려도 그 마음을 다 받아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부모 자식 간에는 그 어떤 죄를 지어도 숨겨주고 모른다고 거짓말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
어머니가 병원 갈 채비를 하면서 세상 모든 것이 다 의자로 보인다는 말씀을 하신다. 꽃들이 핀 것도 아름다움을 담아 놓은 의자로 보이고, 열매를 맺은 것도 다음 해에 씨앗을 남겨 다시 또 열매를 맺어주기 위한 의자로 보이고, 참외 밭에 지푸라기로 똬리를 틀어 준 것만 의자가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이웃과 이웃 간의 관계, 이 세상 모든 관계는 의자라는 이야기다. 맞는 말이다. 서로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도 의자고, 생선을 팔고 있는 사람도 그 생선을 먹게 해주는 삶의 의자다. 그러니 우린 우리들 스스로 서로를 위해 삶의 의자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힘들고 외롭고 가난하고 허전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따뜻한 햇볕을 보라. 그 따뜻함이 무수한 꽃들 앉아있게 피워내는 의자라 생각하면 나의 행복도 내 마음속 의자에 햇볕처럼 무수하게 앉아 있을 것이다. 이 시는 바로 서로가 서로의 고귀함을 알고 살아가게 하는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