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나 이득에 집착하지 말라
손해나 이득에 집착하지 말라
by 운영자 2018.05.15
조그만 이득에 구애되어 손해냐 이득이냐를 문제 삼는 것은 분명 그릇이 작은 사람이 하는 행동이다. 무릇 도량이 큰 인물은 득과 실에 마음을 쓰기는커녕 그에 대해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물론 생각해 보면 손해 인지 이득인지 분명해 지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큰 인물의 기상과 도량이다. 그러한 성격은 본래 타고나거나 가정교육에 의해 얻어진다.
그래서 부모들의 가정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너그럽지 못하고 잔소리를 한다든지 품위 없이 비천하게 군다든지 하면 그 자식은 분명 속이 좁은 인간이 될 것이다. 또한 부모들 자신이 득실에만 집착하면 그 버릇을 자식이 고스란히 물려받을 것이다.
“그것이 없다 해도 네가 죽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탐내는 사람에게 주어라.”
이렇게 교육시킨다면 자식의 장래에 크게 유익할 것이다. 이득이라 해서 도대체 얼마만큼 이득이 되고, 손해라 해서 얼마만큼 손해를 볼 것인가를 따져보면 대개의 경우 그것은 인생에 있어서 별로 큰 문제는 아니다.
‘이 사람은 득실에 집착하고 있구나.’라고 느껴지는 사람을 만났을 경우,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도록 하라. 그렇게 자신을 단련해 가는 사이에 이해득실을 초월하는 심경이 배양되어 갈 것이며, 한때는 손해인 것 같이 보여도 결국 큰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또 손해와 이득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게 습관이 되면 조그만 이득에 일희일비한다든지 그것에 목숨을 걸 듯 매달리는 자신이 정말 추잡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손해와 이득에 어느 정도 구애받느냐, 그것은 사람의 됨됨이를 재는 척도다. 세상에는 두 가지 큰 저울이 있다. 하나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이라는 저울이다. 이 두개의 저울에서 네 가지 등급이 생겨난다. 최상은 옳은 것을 지키면서 이익도 얻는 것이다. 다음은 옳은 것을 지키다가 해를 입는 것이다. 그 다음은 그른 것을 추구하여 이익을 얻는 것이다. 최하는 그른 것을 추구하다 해를 입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들의 가정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너그럽지 못하고 잔소리를 한다든지 품위 없이 비천하게 군다든지 하면 그 자식은 분명 속이 좁은 인간이 될 것이다. 또한 부모들 자신이 득실에만 집착하면 그 버릇을 자식이 고스란히 물려받을 것이다.
“그것이 없다 해도 네가 죽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탐내는 사람에게 주어라.”
이렇게 교육시킨다면 자식의 장래에 크게 유익할 것이다. 이득이라 해서 도대체 얼마만큼 이득이 되고, 손해라 해서 얼마만큼 손해를 볼 것인가를 따져보면 대개의 경우 그것은 인생에 있어서 별로 큰 문제는 아니다.
‘이 사람은 득실에 집착하고 있구나.’라고 느껴지는 사람을 만났을 경우,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도록 하라. 그렇게 자신을 단련해 가는 사이에 이해득실을 초월하는 심경이 배양되어 갈 것이며, 한때는 손해인 것 같이 보여도 결국 큰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또 손해와 이득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게 습관이 되면 조그만 이득에 일희일비한다든지 그것에 목숨을 걸 듯 매달리는 자신이 정말 추잡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손해와 이득에 어느 정도 구애받느냐, 그것은 사람의 됨됨이를 재는 척도다. 세상에는 두 가지 큰 저울이 있다. 하나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이라는 저울이다. 이 두개의 저울에서 네 가지 등급이 생겨난다. 최상은 옳은 것을 지키면서 이익도 얻는 것이다. 다음은 옳은 것을 지키다가 해를 입는 것이다. 그 다음은 그른 것을 추구하여 이익을 얻는 것이다. 최하는 그른 것을 추구하다 해를 입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