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이미숙-독서논술교육

햇나물과 햅쌀

햇나물과 햅쌀

by 운영자 2020.04.13

봄은 어김없이 찾아와 온 세상을 꽃들로 덮어 사람들을 위로하고 기쁨을 선물처럼 안겨준다. 청초한 새아씨 같은 매화가 앞장서 피어 봄이 왔음을 알렸고, 이어 연보랏빛 진달래가 마음 설레게 하더니, 곧이어 탄성 없인 바라볼 수 없는 화사한 벚꽃이 가슴을 벅차게 한다. 곧 봄바람에 눈송이처럼 한 올 한 올 흩어져 버릴 꽃잎들에 대한 서운함을 달래주려고 햇병아리를 닮은 개나리가 사랑스러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꽃들만이 아니다. 땅에는 향기로운 햇나물들이 지천이다. 해쑥을 비롯하여 냉이, 달래, 씀바귀도 널렸고, 잘 찾아보면 햇고사리도 보인다. 장에 나가보면 미끈한 햇무가 저마다 미모를 자랑한다.

위의 짙은 글씨로 쓰인 ‘햇나물’ ‘햇고사리’ ‘햇무’에 들어 있는 ‘햇’은 ‘당해에 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이다. 즉 해마다 나는 물건으로서 그해에 처음 나오는 것을 부를 때 단어 앞에 붙여 쓰는 말이다. ‘햇감자’ ‘햇고구마’ ‘햇과일’ ‘햇곡식’ 등 많은 단어들이 있다. 또 ‘햇’이 ‘햇병아리’ ‘햇강아지’ ‘햇비둘기’에 쓰일 때는 ‘난 지 얼마 되지 않은’의 뜻을 가진다.

한편 접두사 ‘햇’ 뒤에, 첫소리가 된소리(ㄲ, ㄸ, ㅃ, ㅆ, ㅉ)나 거센소리(ㅋ, ㅌ, ㅍ, ㅊ)인 일부 명사가 올 때는 ‘해쑥’ ‘해콩’ ‘해팥’과 같이 ‘해’로 쓴다. ‘햇쑥’ ‘햇콩’ ‘햇팥’으로 쓰면 틀리다.

그런데 ‘햇’이 ‘쌀’ 앞에 붙을 때는 ‘햅쌀’과 같이 ‘햅’이 된다. ‘쌀’은 옛말에서 첫소리가 ‘ㅆ’이 아닌 ‘ㅂㅅ ’이었기 때문에 그 앞에 ‘해’가 붙으면 뒤의 첫소리인 ‘ㅂ’이 붙은 ‘햅’이 된다. (‘조+쌀’을 ‘좁쌀’로, ‘이+쌀’을 ‘입쌀’로, ‘메+쌀’을 ‘멥쌀’로, ‘벼+씨’를 ‘볍씨’로 쓰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햅쌀을 ‘햇쌀’이나 ‘해쌀’로 쓰면 틀린 말이 된다.
새하얀 입쌀밥에 갖가지 햇나물을 넣고 비벼 먹는 것도 봄을 한껏 즐기는 방법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