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이미숙-독서논술교육

조우와 만남

조우와 만남

by 운영자 2020.04.02

“2020년대라는 새로운 10년의 벽두에서 우리 인류는 예기찮은 바이러스 폭풍과 조우했다.” “노장 추성훈과 아오키 신야가 싱가포르 원챔피언십이란 무대에서 조우했다.”
“영화 ‘작은 아씨들’이 2030 여성들의 소녀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동화책이나 만화책으로 이들을 만났던 독자들은 이제 어른이 되어 다양한 번역본으로 네 자매와 조우하고 있다.”

최근 뉴스들이다. ‘조우하다’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문맥과 어울리지 않아 불편함을 느낀다.
‘조우(遭遇)하다’는 우연히 서로 만난다는 말이다. 위의 문장들에서, “바이러스와 우연히 만났다”는 건 어딘가 이상한 말이다. 추성훈과 아오키신야가 경기에서 만난 것은 우연한 일일 수 없다. 여러 사람의 계획과 노력이 어우러져서 비로소 만나게 된 일이다. 또 독자들이 ‘작은 아씨들’을 만나는 것은 책을 읽는 의도적 행위에서 비롯되는 일이므로 우연한 일일 수 없다.
위의 문장들에 있는 ‘조우하다’를 모두 그냥 ‘만났다’고 하면 자연스럽고 알아듣기 쉬울 텐데 굳이 뜻도 모르는 한자말 쓰느라 읽는 이들에게 혼란만 안겨준 꼴이 되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정경심 동양대 교수 부부가 이르면 3월께 법정에서 조우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보도도 있었다. 두 사람이 법정에서 우연히 만날 것으로 보인다니 지나가던 OO가 다 웃을 노릇이다. “같은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될 수도 있다.”라든가, “법정에서 마주칠 수도 있다.”라고 쓰면 될 것을 멋부려 쓰느라 웃기는 말이 되었다.

‘조우’의 순화어는 ‘만남’ 또는 ‘우연히 만남’이다. 우리말을 쓰는 것이 한자말 가져다 멋있게 쓰려다가 도리어 무식을 드러내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