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이미숙-독서논술교육

바쁘신 와중에

바쁘신 와중에

by 운영자 2020.03.26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저희 결혼식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쁘신 와중에 제 이야기를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입에 습관으로 붙은 말이 있다. ‘바쁘신 와중에’이다. 말의 뜻을 모르고 남들 따라 쓰는 것임에 틀림없다.
‘와(渦)’는 소용돌이치는 물이다. ‘와중(渦中)’은 ‘흐르는 물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의 뜻을 가진 말이다. ‘일이나 사건 따위가 시끄럽고 복잡하게 벌어지는 가운데’라는 비유적인 뜻으로 자주 쓰인다. 아래 예문은 ‘와중에’가 잘 쓰인 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세계적 확산 속에 거의 모든 국가가 방역에 전념 중인 와중에 북한의 행보는 비정상적이다. 지난 2일과 9일 ‘초대형 방사포’를 쏜 데 이어···”
“일본 정부가 24일 코로나19 와중에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를 무더기 검정 승인했다.”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요즘의 사태는 강물이 소용돌이치는 것과 같이 어지러운 상황이므로 ‘와중에’라는 말이 썩 어울린다. 그러나 아무데나 생각 없이 붙여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다음 예문을 보자.
“내가 원하는 것을 향해 힘차게 달리는 와중에 발자취를 남기는 공간”
“만개의 레시피 고소한 향미가 넘쳐흐르는 와중에 치즈까지?”

‘와중에’의 뜻을 알고 들으면 아주 웃기는 말들이다. 원하는 것을 향해 힘차게 달리는 것은 신나고 기쁜 일이다. 또 고소한 맛과 향기가 넘치는 것도 행복한 일이므로 물이 소용돌이치는 것과 같은 어지럽고 사나운 일과는 거리가 멀다. 한자말을 쓸 때는 뜻을 제대로 알고 쓰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