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by 운영자 2020.04.22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著 『김춘수전집 1 詩』, 《문장, 1984년》에서

[작품해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은 가치와 존재의 거리를 잘 표현해 주는 시라 하겠다. 우리는 외모를 통해 마음을 읽어낸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그 아름다움을 꽃피우고자 했던 지난 시간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 사람의 모습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사람의 모습도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살았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해서 꽃이 피는 세상과 다를 게 없다. 꽃은 꽃을 피우는 식물이나 나무로 살아가는 것뿐이고, 사람은 이 세상을 지배하며 살아가는 동물일 뿐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것은 서로의 존재성을 알아간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성을 인정하고 알았을 때 그 모든 대상은 아름답게 보이고 소중하다.

김춘수 시인이 꽃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느끼는 것에 머물지 말고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그 소중함만큼 더 많은 사랑을 베풀어야 그 소중함이 유지되고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진실한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나만 꽃이 되어서는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가 꽃이 될 때 아름다운 세상이 이루어진다. 꽃은 그런 향기로움을 간직하라고 향기를 품고 피어난다. 내가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되어야 아름다운 세상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