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족이 죽었는데, 보험금을 받아 무엇 하랴!

가족이 죽었는데, 보험금을 받아 무엇 하랴!

by 운영자 2019.12.19

오늘은 첫 눈이 흩어지며 내리고 있습니다. 2019년이 왔다며 희망차게 시작한 지가 어제 같은데, 오늘 내리는 눈을 창가로 보면서 감회에 잠기게 됩니다. 이렇게 세월이 가면 아가는 어린이가 되고, 영원히 젊을 것 같은 청춘은 빠르게 지나가게 됩니다.
요즘은 사회에서 가끔이나마 전화로 안부를 전했던지, 업무 때문에 보았던 사람들, 스쳐지나가는 인연이었지만 기억 한 편에 존재했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생각지도 못한 연락을 받게 되고, 그러면 우울해집니다.
푸르른 저 나무도 내년에는 또다시 푸르러지건만 한 번 간 사람은 돌아오지를 않으니 세월의 무상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울함은 상실감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열심히 이뤄 놓은 것에 부질없음에 대한 부분도 있겠지요...
보험사고를 위임받아 처리하다 보면 사랑하는 아들, 딸의 자살이나 남편 혹은 부인의 자살로 인해 보험금을 청구하는 것에 대해 수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유서도 없이 아파트 고층에서 투신한다던지, 연탄불을 피고 방안에서 죽은 상태로 발견된다던지, 우울증에 힘들어 하다가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고를 처리하다 보면 또 우울해집니다. 그 우울함은 살아있는 가족들의 죽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이 이입되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죽었는데 보험금을 받아 무엇 하랴!’ 특히 자식을 잃은 부모는 이런 생각이 더욱 짙은 것 같습니다. 자살한 자식을 두고 보험금을 받으려 한다는 것이 사회에 좋지 않게 비쳐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경우 저는 말합니다. “아드님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겨 놓은 권리입니다. 그 권리를 찾아 주는 것이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입니다. 그러니 떳떳하게 아드님의 권리를 주장해야 합니다.”
자연적인 수명에 의해 사망을 하던, 자살을 하던, 인간은 모두 죽는 것입니다. 2019년에 피었다가 진 꽃이나 나뭇잎도 정확히는 2020년의 필 꽃과 나무와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아름다웠고, 그늘을 만들어 주었듯이, 우리도 열심히 삶을 사랑하며 살았다면 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