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금물로 쓴 글씨

금물로 쓴 글씨

by 운영자 2019.10.08

- 허형만-

지성으로 절에 다니시는 어머니께서
장롱 깊숙한 곳에 모셔둔
금물로 씌어진 반야심경을 내놓으시며
제 손을 고즈너기 잡으셨지요
저도 어머니 마틀마틀한 손결이
어쩌면 이리도 다사롭냐고 눈웃음 쳐주고
알만한 글자 홰친홰친 읽어 내려가니
눈물 흘리시며 나무아미타불 합장하셨지요
그날 밤 저는 잠 한 숨 못 잤어요
어머니 흘리시던 그 여울 같은 눈물이
하전하전한 나이이신데도 당신의 피를
금물로 바꾸신 글씨였음을 알았거든요

문협 문안지부 刊 『 무안문학』, 2006년에서

작품설명
이 세상 모든 어머니가 부처 아닌 어머니 없을 것이고 하느님 아닌 어머니가 없을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이라면 하느님도 되고 부처님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그 헌신을 대신할 만큼 나를 다독여 줄까 생각을 해 보면 아무도 없다고 손사래를 칠 것이다. 허형만 시인의 시 「금물로 쓴 글씨」는 시인의 어머니께서 금물로 쓴 반야심경을 내놓으시면서 그 글씨를 읽어 내려가자 어머니는 말없이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며 합장을 하셨다고 했다. 본인이 직접 금물로 반야심경을 쓰시지는 않았겠지만 반야심경의 금물 글씨를 받고서 그 뜻을 가슴에 깊이 새겼을 것이다.

글씨를 금물로 썼다고 해서 그 뜻이 더 고귀한 것은 아니다. 글씨를 쓰는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깊이 담겼느냐에 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물로 글씨를 썼다는 것은 그만큼 그 뜻이 소중하고 마음의 빛으로 삼고 싶다는 애정이 절실하다는 거다. 허형만 시인은 반야심경의 금물 글씨를 통해 일생 어머니께서 무엇을 소망하며 살았는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다정다감하게도 눈웃음쳐주며 그 높은 뜻을 금물 글씨로 바꾸어 내놓으신 마음을 바라보신다. 피로 새긴 어머니의 마음 글씨이기에 반야심경 깊은 뜻은 모르더라도 어머니 마음이 글씨로 빛나고 있음을 읽게 하는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