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맞아 휘어진 대(竹)
눈 맞아 휘어진 대(竹)
by 운영자 2019.01.29
원천석
눈 맞아 휘어진 대를 뉘라서 굽다턴고
굽을 절(節)이면 눈 속에 푸를소냐
아마도 세한고절(歲寒高節)은 너 뿐인가 하노라
*제목은 임의로 필자가 붙임
다람쥐문고 편집부 편 『한국명시조선』, 《문창사》에서
작품설명
원천석(1930~?)은 고려가 폐망할 때 이성계가 세우는 조선의 개창에 반대하여 두문동에서 끝까지 남은 두문동 칠십이현(杜門洞七十二賢)의 한 사람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철새 정치인이 아니라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의리를 신봉하는 절개파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임의로 「눈 맞아 휘어진 대(竹) 」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옛 시조는 작품에 제목이 없다. 이 시조에는 신의를 중시한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원천석의 묘는 원주 행구동 칠봉서원에 배향되어 있다. 호는 운곡(耘谷)이다 김을 매는 골짜기에서 살아간다는 뜻이 담겨 있다. 실제 원천석은 원주 치악산 골짜기에서 은둔하며 일생을 마쳤다고 전해진다.
특히 태종(이방원)이 왕위에 올랐을 때 스승인 운곡을 찾아가 정사를 의논하고자 했으나 운곡이 태종을 피하자 운곡을 기다렸다는 바위가 주필대이다. 횡성군 강림면 강림 2리에 1984년 복원을 하면서 태종이 기다렸다가 갔다고 하여 태종대(太宗臺)로 부르고 있다.
시조에서도 잘 드러나 있듯이 “눈 맞아 휘어진 대(竹)를 뉘라서 굽었다고 할 것이며/ 굽은 절(節)이면(꺾였다면) 눈 속에 푸를소냐 / 아마도 세한고절은 너 뿐인가 하노라”라며 눈 속에 푸른 대나무의 지조를 본인의 삶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 이 시조의 요점이다. 이 시조와 관련하여 원주 행구동에 위치한 원천석의 묘와 태종이 머물렀다는 태종대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눈 맞아 휘어진 대를 뉘라서 굽다턴고
굽을 절(節)이면 눈 속에 푸를소냐
아마도 세한고절(歲寒高節)은 너 뿐인가 하노라
*제목은 임의로 필자가 붙임
다람쥐문고 편집부 편 『한국명시조선』, 《문창사》에서
작품설명
원천석(1930~?)은 고려가 폐망할 때 이성계가 세우는 조선의 개창에 반대하여 두문동에서 끝까지 남은 두문동 칠십이현(杜門洞七十二賢)의 한 사람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철새 정치인이 아니라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의리를 신봉하는 절개파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임의로 「눈 맞아 휘어진 대(竹) 」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옛 시조는 작품에 제목이 없다. 이 시조에는 신의를 중시한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원천석의 묘는 원주 행구동 칠봉서원에 배향되어 있다. 호는 운곡(耘谷)이다 김을 매는 골짜기에서 살아간다는 뜻이 담겨 있다. 실제 원천석은 원주 치악산 골짜기에서 은둔하며 일생을 마쳤다고 전해진다.
특히 태종(이방원)이 왕위에 올랐을 때 스승인 운곡을 찾아가 정사를 의논하고자 했으나 운곡이 태종을 피하자 운곡을 기다렸다는 바위가 주필대이다. 횡성군 강림면 강림 2리에 1984년 복원을 하면서 태종이 기다렸다가 갔다고 하여 태종대(太宗臺)로 부르고 있다.
시조에서도 잘 드러나 있듯이 “눈 맞아 휘어진 대(竹)를 뉘라서 굽었다고 할 것이며/ 굽은 절(節)이면(꺾였다면) 눈 속에 푸를소냐 / 아마도 세한고절은 너 뿐인가 하노라”라며 눈 속에 푸른 대나무의 지조를 본인의 삶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 이 시조의 요점이다. 이 시조와 관련하여 원주 행구동에 위치한 원천석의 묘와 태종이 머물렀다는 태종대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