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장에서
양계장에서
by 운영자 2018.10.29
김중식
닭의 날개를 잘라도
병아리는 날개를 달고 태어난다 그것을
닭목가지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라고 말하겠지만
새벽이 오면 어김없이 밤이 또 오는 것
닭은
날개가 달렸으면서도 날아가려 하지 않고
날지도 못하면서 감히, 날아가고 싶어하지 않고
지 피를 토하지 않아도 저절로 오는 새벽 앞에서 경계 경보를 울리다가
똥구멍에서 목구멍까지 공습당하고
아무리 자유를 외쳐도 닭을 낳는다
알을 깨고 나온 닭은
알을 깨고 나와야 할 더 많은 알만 낳는다.
김중식 시집 『황금빛 모서리』, 《문학과지성사, 1993년 발행》에서
닭이나 돼지 토끼 같은 가축들은 야생의 것들이 사람의 손에 길들어져 기르는 동물이다. 그 때문에 자연의 상태에서 스스로 먹이활동을 통해 살아갈 수 있는 본능이 퇴화되어 사람이 주는 먹이에 의존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비단 사람의 손에 기르지는 않지만 타조 같은 것은 오랜 시간 자신을 잡아먹을 천적이 없자 날개가 퇴화되어 날지 않고 대신 빠른 발걸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김중식 시 「양계장에서」는 닭이 알을 그렇게 많이 낳고 사람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그 좁은 틈에서 일생을 보내면서도 그 알에서는 다시 병아리가 되어 나오는 알을 낳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동물이나 가축들은 사람에 길들어진 먹이 사슬의 종으로 남아 있다는 의식을 갖게 한다.
사람이 살아온 세상의 구조도 이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어느 나라에나 민족성이 있다. 그 민족성은 그 민족의 삶과 깊게 연관되어 몸속에서 자리 잡은 것이다. 흔히들 전통이라는 것에는 민족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칼춤이라든지, 불춤, 또는 몸을 흔드는 모든 동작이 살아남으려는 행동들에서 비롯되어진 것이다.
닭들은 잠이 들면 제 몸을 쥐나 다른 동물들이 갉아 먹어도 모른다고 한다. 그만큼 무딘 감각을 갖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제 몸의 아픔을 참고 견뎌줌으로써 다른 닭에게 그 아픔을 주지 않는다는 식으로 좋게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닭들도 제 삶의 공간을 갖고 살아야 그 알이 사람에게 좋은 영양을 공급한다고 한다.
자유는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새벽이 오는 이유는 닭이 울지 않아도 오지만 새벽이 온다고 알리는 닭 때문에 많은 사람의 정신이 눈이 뜬다고 생각한다. 양계장의 닭들은 더 많은 알을 위해서 제 몸을 구속시키는 주인에게 충성을 다해 알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닭의 날개를 잘라도
병아리는 날개를 달고 태어난다 그것을
닭목가지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라고 말하겠지만
새벽이 오면 어김없이 밤이 또 오는 것
닭은
날개가 달렸으면서도 날아가려 하지 않고
날지도 못하면서 감히, 날아가고 싶어하지 않고
지 피를 토하지 않아도 저절로 오는 새벽 앞에서 경계 경보를 울리다가
똥구멍에서 목구멍까지 공습당하고
아무리 자유를 외쳐도 닭을 낳는다
알을 깨고 나온 닭은
알을 깨고 나와야 할 더 많은 알만 낳는다.
김중식 시집 『황금빛 모서리』, 《문학과지성사, 1993년 발행》에서
닭이나 돼지 토끼 같은 가축들은 야생의 것들이 사람의 손에 길들어져 기르는 동물이다. 그 때문에 자연의 상태에서 스스로 먹이활동을 통해 살아갈 수 있는 본능이 퇴화되어 사람이 주는 먹이에 의존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비단 사람의 손에 기르지는 않지만 타조 같은 것은 오랜 시간 자신을 잡아먹을 천적이 없자 날개가 퇴화되어 날지 않고 대신 빠른 발걸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김중식 시 「양계장에서」는 닭이 알을 그렇게 많이 낳고 사람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그 좁은 틈에서 일생을 보내면서도 그 알에서는 다시 병아리가 되어 나오는 알을 낳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동물이나 가축들은 사람에 길들어진 먹이 사슬의 종으로 남아 있다는 의식을 갖게 한다.
사람이 살아온 세상의 구조도 이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어느 나라에나 민족성이 있다. 그 민족성은 그 민족의 삶과 깊게 연관되어 몸속에서 자리 잡은 것이다. 흔히들 전통이라는 것에는 민족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칼춤이라든지, 불춤, 또는 몸을 흔드는 모든 동작이 살아남으려는 행동들에서 비롯되어진 것이다.
닭들은 잠이 들면 제 몸을 쥐나 다른 동물들이 갉아 먹어도 모른다고 한다. 그만큼 무딘 감각을 갖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제 몸의 아픔을 참고 견뎌줌으로써 다른 닭에게 그 아픔을 주지 않는다는 식으로 좋게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닭들도 제 삶의 공간을 갖고 살아야 그 알이 사람에게 좋은 영양을 공급한다고 한다.
자유는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새벽이 오는 이유는 닭이 울지 않아도 오지만 새벽이 온다고 알리는 닭 때문에 많은 사람의 정신이 눈이 뜬다고 생각한다. 양계장의 닭들은 더 많은 알을 위해서 제 몸을 구속시키는 주인에게 충성을 다해 알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