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꺼라
텔레비전을 꺼라
by 운영자 2018.05.01
P씨는 갓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 녀석의 성적이 갑작스레 크게 떨어지자 다짜고짜 불호령을 내려 그 이유를 캐물었다. 이에 아들은 황당한 답변을 내놓았다.
“아빠가 틀어 놓은 텔레비전 소리ㅐ가 하도 커서 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어요.” 가당치도 않은 변명에 기가 막히고, 제 잘못을 뒤집어씌우려는 태도에 화가 난 P씨는 이내 텔레비전을 아파트 쓰레기장으로 즉시 내다 버렸다. 그리고는 가쁜 숨을 내 쉬면서 아들에게 엄포를 놓았다.
“너, 두고 보자. 텔레비전이 없는데도 성적이 안 오르면….”
6개월 후, 아들이 성적표를 내 밀었다. 신기하게도 정말 성적이 예전만큼 회복되어 있었다.
텔레비전이 사라지자 뜻하지 않은 수확이 뒤따랐다. 대한민국 모든 남성이 그렇듯 P씨 또한 젊은 시절부터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지 못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 퇴근하고 어떤 때는 주말에도 근무를 했다. 바쁜 생활 속에 잠시 여유가 생길 때면 늘 텔레비전을 보거나 잠을 잤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과의 대화가 사라지고 자연스레 소원한 관계로 돌아섰다. 왠지 모를 벽이 생긴 것도 같았다. 가족에게 소외를 당하는 것 같은 느낌에 더욱 텔레비전을 찾았고 그럴수록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그런데 그날 이후 텔레비전을 버리자 아들과의 대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딱히 할 게 없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아들도 마음을 열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오고가는 대화를 통해 P씨는 아들의 고민을 이해하고 방황하는 사춘기 시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붙들어주었다.
‘그 놈의 텔레비전이 가정의 원수였나.’하는 생각이 뇌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텔레비전이 없는 우리 집은 아들과의 대화에 아무지장이 없는 건가.
‘텔레비전이여 영원히 잘 있거라!’
‘텔레비전이여 굳 바이. 우리 아들을 위하여. 내 가정을 위하여.’
“아빠가 틀어 놓은 텔레비전 소리ㅐ가 하도 커서 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어요.” 가당치도 않은 변명에 기가 막히고, 제 잘못을 뒤집어씌우려는 태도에 화가 난 P씨는 이내 텔레비전을 아파트 쓰레기장으로 즉시 내다 버렸다. 그리고는 가쁜 숨을 내 쉬면서 아들에게 엄포를 놓았다.
“너, 두고 보자. 텔레비전이 없는데도 성적이 안 오르면….”
6개월 후, 아들이 성적표를 내 밀었다. 신기하게도 정말 성적이 예전만큼 회복되어 있었다.
텔레비전이 사라지자 뜻하지 않은 수확이 뒤따랐다. 대한민국 모든 남성이 그렇듯 P씨 또한 젊은 시절부터 아이들과 많이 놀아주지 못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 퇴근하고 어떤 때는 주말에도 근무를 했다. 바쁜 생활 속에 잠시 여유가 생길 때면 늘 텔레비전을 보거나 잠을 잤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과의 대화가 사라지고 자연스레 소원한 관계로 돌아섰다. 왠지 모를 벽이 생긴 것도 같았다. 가족에게 소외를 당하는 것 같은 느낌에 더욱 텔레비전을 찾았고 그럴수록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그런데 그날 이후 텔레비전을 버리자 아들과의 대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딱히 할 게 없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아들도 마음을 열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오고가는 대화를 통해 P씨는 아들의 고민을 이해하고 방황하는 사춘기 시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붙들어주었다.
‘그 놈의 텔레비전이 가정의 원수였나.’하는 생각이 뇌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텔레비전이 없는 우리 집은 아들과의 대화에 아무지장이 없는 건가.
‘텔레비전이여 영원히 잘 있거라!’
‘텔레비전이여 굳 바이. 우리 아들을 위하여. 내 가정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