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여름용 소울푸드, 막국수

여름용 소울푸드, 막국수

by 운영자 2018.06.07



지난 주말. 초등학교 동창의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23년 만에 고향에 갔다. 결혼식이 끝나고 아이들에게 엄마가 살았던 집과 동네, 초등학교를 보여주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 찾아갔다.
카지노가 들어선 뒤 마을이 참 많이 변해있었다.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킨 성당을 기억하고 초등학교를 찾아갔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는 큰 건물이 헐리고 청소년 장학센터가 들어섰다.

매일 뛰어놀던 운동장은 자갈이 깔린 공영주차장으로 되어있었다. 꼬박 6년을 다니며 놀고 공부하던 곳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됐을까. 학교를 나와 우회전을 한 뒤 가파른 길로 쭈욱 올라가면 내가 살던 동네가 나온다. ‘소잡는골’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다. 물론 내가 사는 동안엔 소를 잡는 동네는 아니었다. 예전 다니던 길보다 훨씬 거리상 가까워진 느낌이다. 동네엔 집이 모두 사라졌고 사람 발길 닿지 않는 공원이 되어 있었다.

정말 빼곡히 집이 있었는데. 마을회관 앞에 우리 집이 있었고 우리 집 옆에는 범수네 집, 우리 집 뒤에는 빼빼 아줌마랑 꼬마 새댁이 살았고, 우리 집 앞에는 오늘 결혼한 내 친구 옥진이가 살았었는데….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동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중에 친구에게 들은 바로는 이미 오래전에 동네가 없어졌다고 한다. 그리 먼 곳도 아니었는데 왜 한 번도 안 가봤을까. 너무 후회됐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감을 새삼 느꼈다.
머릿속에서만 생생한 내 유년 시절의 동네와 우리 집, 친구들을 더 잊기 전에 글로 남겨두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속상한 마음을 위로해줄 만한 시원한 여름용 소울푸드, 막국수를 먹기로 하고 고민을 시작했다.
자주 가는 그 집 말고 다른 곳은 없을까. 원주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남경막국수. 한 번도 가본적이 없다.
어떤 맛일까. 어떤 스타일일까. 궁금증을 안고 무실동으로 향했다. 식당에는 빈자리가 날새 없이 손님들로 금방 채워졌다. 막국수와 편육으로 구성된 남경세트메뉴를 주문했다.

물막국수에 정말 큼지막한 오이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보통 채썬 오이를 조금씩 올려주는데 큰 오이를 턱 하니 올려준다. 평소에 즐겨 먹었던 새콤 달콤의 막국수와는 확연히 다른 구수함이 느껴지는 막국수였다. 진한 고기 육수와 마지막 단계에서 넉넉하게 뿌린 참기름 때문에 약간 느끼한 것 같지만 이런 느끼함을 고춧가루가 잡아주는 것 같다. 물김치를 올려서 한 젓가락 먹어보니 시원함과 감칠맛이 확 살아났다. 내 입엔 조금 밍밍하게 느껴졌다. 다음번엔 비빔막국수로 주문해 먹어봐야겠다.

그동안 한 번쯤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던 막국수 집에 다녀왔다. 다음번에, 다음번에 하고 미뤄뒀던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살피고 살아가야겠다.

김경주 기자 pool1004.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