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이 프릴의 딸

에이 프릴의 딸

by 운영자 2019.05.09

프릴의 딸<장르> 드라마, 미스터리
<감독> 미셸 프랑코
<출연> 엠마 수아레스, 안나 발레리아 베세릴
<개봉> 5월 9일

30대의 젊은 엄마 에이프릴(엠마 수아레스)은 어느 날, 거리를 두고 살아가던 임신한 딸 ‘발레리아’(안나 발레리아 베세릴)를 찾아온다. 발레리아처럼 15세의 나이에 첫째 딸 ‘클라라’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 에이프릴은 17세에 처음 겪는 출산 경험에 지쳐가는 딸을 정성껏 돌봐주겠노라 약속한다. 이후 어느 순간 엄마 에이프릴은 딸의 자식과 아이를 탐해 빼앗고 그 둘과 함께 이민까지 꿈꾼다. 이를 위해 휴대폰 번호도 바꾸고 자신의 두 딸이 살던 집을 부동산에 내놓기까지 한다. 그러다가 일이 원하는대로 풀리지 않자 수틀려 아이를 버리고 도망가 버린다.
문제는 당최 에이프릴이 이런 짓을 하는 이유를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열심히 검색을 통해 얻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보면 그제서야 머리로라도 이해가 된다. 감독의 의도는 ‘욕망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성을 이기는 경우를 보여줌으로써 모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것’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수긍이 되지 않는 부분은 먼저 모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다소 기괴하고 극단적인 설정이 반드시 필요했는지 하는 점이다. 둘째로는 엄마 에이프릴이 왜 그렇게 욕망 덩어리가 됐고 언제부터 그렇게 욕망이 있었는지 캐릭터에 대한 개연성과 설명이 부재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근원적인 영화의 목적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상업영화는 이윤을 목적으로 한다. 독립영화는 창작자의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다. 그 목적은 근본적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질 때 비로소 달성 가능하다. 그런 의도가 아니라면 굳이 개봉을 통해 독자들에게 보이려 하기보다 주변 지인들과 나눠보면 그만이다.
대중과는 괴리된 ‘영화제를 위한 영화’의 전형이다. 대중의 공감과 평가는 안중에도 없고 새로운 시각에 대한 강박으로 발버둥쳐 만든 조악한 결과물이라고나 할까. 여운이 남는 영화는 좋은 영화지만 여운을 남기는 방법으로 비약을 선택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만약 감독이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아도 돼. 아는 사람은 그 진가를 다 알아 볼테니’ 정도의 의도로 만들었다면 이 영화는 대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