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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일기할머니’ 귀래면 최영숙 씨

“반듯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일기할머니’ 귀래면 최영숙 씨

by 운영자 2018.08.01

‘일기할머니’ 귀래면 최영숙 씨

“3월 8일 용암국민학교에서 소풍 가는 날이었다. … 내가 학교 다닐 때에 선생님과 동무들의 손을 마주 잡고 산과 들에 경치 좋은 곳을 찾아가며 소풍 다니든생각이 어제 일처럼 그리워지는구나. 나도 어릴 때는 친구들의 사랑도 받고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벗 하나 없이 외로운 나룻배에 형상이 되고 말았다.” 자녀의 소풍날 아주 오래전 자신의 소풍날이 불현듯 떠올랐던 모양이다.

최영숙 씨는 1955년부터 2006년까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적었다. 음력 날짜를 적고 그날 날씨를 비교적 정확하게 적었다. 농사일하고 두루마기를 만들기 위해 시어머니와 며칠 동안 바느질한 일상과 아이들 학교생활, 이웃과 마을의 대소사 등 하루하루 역사가 쌓여갔다.

귀래면에 사는 최영숙 씨는 15살 때부터 적어온 일기 105권을 최근 국가기록원에 기증했다. 국가기록원 측은 그의 일기를 지역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라며 보존하기로 했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1등만 했던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못 했다. 어떻게든 학업을 이어가고 싶었던 그가 택한 것은 일기를 쓰는 것. “변변한 일기장도 없어 갱지를 색실로 엮어 일기장을 만들어 하루하루 채워나갔다. 일과를 마치고 늦은 밤, 때로는 새벽에 일기를 썼다. 그 시간이 정말 좋았다. 인간 최영숙의 인생은 물론 용암마을 사람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글이 완성됐다. 일상을 솔직하게 적다 보니 더 반듯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동안 쓴 일기만 100권이 넘는다. 몇 해 전 상지대 교수들이 찾아와 일기를 가져가 제본해 주면서 멋진 책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중간에 일기를 엮어 수필집을 몇 권 냈다. 남편은 출판기념회도 열어줬다. 남편의 관심과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옆에서 인터뷰를 듣고 있던 남편 김긍수 씨는 “일기를 다읽어봤다. 정말 세세한 것까지 다 적었다. 재와 령의 차이를 아내의 일기장을 보고 알았다. 볼 때마다 새롭고, 보면서도 놀랍다”고 말했다.

최영숙 씨는 한동안 건강상의 이유로 일기쓰기를 중단했다. 뇌수술을 받아 연필을 쥐고 쓰는 게 쉽지 않았단다. 이번에 국가기록원에서 감사장을 받으며 다시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멋진 필체는 아니지만 여든이 넘은 최영숙 씨의 일상이 또다시 소소하게일기장 위에 남는다.

김경주 기자 pool1004.blog.me